“양 선생! 양 선생이 왜 멋있는 사람인가 하고 늘 생각해 봤는데 오늘에야 그 답을 얻었구먼! 어찌 그리 멋있는 생각을 하고 그 일을 실천에 옮길 용기를 가졌단 말이요? 참 멋있어, 어쩐지 멋있더라고!“(양혜숙, 『사람은 무엇으로 신나는가』, 어티피컬, 2024, 17~18쪽)
월간 ‘춤’지 발행인 조동화 선생이 1996년 한국공연예술원 설립 광고를 접하고 양혜숙 선생에게 전한 메시지다. 양혜숙은 연기, 소리, 무용의 융합을 모색한 한국공연예술원의 설립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은 몇 안되는 어른으로 조동화 선생을 손꼽는다. 한국공연예술원은 조동화를 비롯 이두현, 여석기 등 당대 공연예술계 최고 권위자들의 자문과 비호하에 닻을 올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극학자 양혜숙은 한극(韓劇: Han Theater)으로 등식화된다. 한극이란, 한국의 가(歌)·무(舞)·악(樂) 등 전통문화를 현대화한 공연예술을 총칭하는 용어다. 그는 일찍이 우리 고유의 가무악 즉 전통공연예술을 한극이라 명명하고, 민족의 문화원형과 정체성 찾기에 몰두한다. 단지 개인적 차원의 연구에 머물지 않고 실천적 행보를 통해 이론과 실기를 넘나들며 새로운 개념과 가치 창출에 매진한다. 한극은 전통의 현대화 혹은 전통의 재해석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 또는 온고지신(溫故知新)과도 의미상 그 맥을 같이한다.
양혜숙은 우리시대 최고 엘리트 출신 문화지성으로 손색이 없다. 1936년 서울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인 부친과 신여성을 동경한 모친 사이에서 예쁘고 총명한 아이로 성장했다. 1960년대 초반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튀빙겐 대학 철학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유학시절 독문학, 미술사, 철학을 전공하면서 사유의 지평을 넓혔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풍부한 인문적 소양과 깊고 넓은 통찰의 독보적 학문세계 그리고 수준높은 심미안을 지니게 된 결정적 연유일 게다. 귀국 후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약관의 나이에 동 대학 독문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30여년 간 봉직했다. 일평생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한극의 현대화 내지 세계화를 위해 몰두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실로 존경스럽다.
주지하듯, 양혜숙은 독일유학파 1세대를 대표하는 연극학자다. 일찍이 문화선진국에서의 유학경험은 ‘우리 것’에 대한 재인식의 싹을 틔우는 동인이 되었다.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자각은 귀국 후 민족의 문화원형 찾기에 나서도록 추동했다. 한극에 대한 관심의 단초는 우리 고유의 정신과 몸짓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예악사상이 투영된 왕실문화와 흥과 신명이 깃든 기층문화의 융합연구를 통해 한국 고유의 독창적 공연예술문화를 정립했다. 이른바 한극은 그 결과의 산물이라 하겠다.
알다시피, 한국공연예술원은 한극의 개념을 탄생시킨 성소로 통한다. 한국 고유의 공연문법 체계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공연예술원은 공연과 심포지엄 및 기록 출판을 통해 ‘한극’의 체계적 정립과 계승, 발전을 위한 기반 마련에 힘썼다. 우리 문화의 근원 탐구를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30여년간 개최해왔음은 실로 경이롭다. 학술심포지엄 결과물은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를 비롯 『샤먼 문화-굿에 담긴 공연예술의 뿌리』, 『불교의례』, 『궁중의례』 등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한국 공연예술의 학문적 자양을 튼실하게 채워줬다는 평가다.
특히 우리 문화의 원형인 굿에 대한 양혜숙의 관심은 남달랐다. ‘샤마니카 페스티벌’(1997)을 시작으로 한민족 뿌리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의 굿판을 누비고 다녔다. 굿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이를 바탕으로 한 한극 매소드 정립은 유의미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또한 샤머니즘과 불교의례, 한국 공연예술과 샤먼문화 등을 담론화했으며, 한극의 고유성과 정신의 근원에 대한 탐구에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나아가 학술활동을 통해 한국공연예술의 학적 담론을 주도하였고, 국제교류에도 앞장섰다. 독보적 이력이 반증한다. 예컨대,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카프카학회 회장, 브레히트학회 부회장, 세계공연예술협회(Internaional Theater Institut =ITI) 한국회장, ITI 아.태 지역협회 창립회장, BESETO 위원장, NIB(Nepal,India, Bangladesh) 창립위원장, UNESCO한국본부 이사를 지냈다. 또 여성연극인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왕성한 행보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여성 연극인으로서의 선구적 활동은 단연 돋보인다.
한편, 한극의 몸짓언어와 공연문법의 체계화를 위한 노력도 주목된다. 한국공연예술 기법을 실험하기 위해 <業;카르마 1>(베트남 하노이 실험공연예술제 대상 수상), <業;카르마 2>(키프로스 Odeon Theatre 초청 공연), <코카서스 백묵원>, <우주목 바리공주>, <피우다>, <레이디 원앙> 등 다양한 실험공연을 개최하여 큰 반향을 끌었다. 타문화의 답습 내지 모방이 아닌, 우리 공연예술의 원형 탐색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전통공연에 대한 실기 교육의 부족함을 깨닫고 기초적인 교육시스템 마련에도 주력했다. 서구 연극에 익숙한 배우들이 우리 고유의 정통 발성과 호흡, 몸짓, 표정연기 등 체계적인 습득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전통예인 내지 국악명인들을 찾아다니며 배움의 길을 열어줬다. 김천흥, 박병천, 김월하, 김소희 등 근현대 질곡의 역사를 관통한 가운데 삶의 희노애락을 예술로 승화한 명인들의 예술혼을 반추하고 그 가치를 일깨웠다.
독일 연극을 번역하여 국내에 알린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볼프랑메링의 실험연기론』 등 총 22편의 작품을 번역 출간하였다. 특히 1969년 피터 한트게의 ‘관객모독’을 번역 소개한 것은 현대한국연극사의 일대 ‘사건’으로 간주된다. 서구 연극을 추종하던 연극 풍토에서 ‘언어연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소개하여 한국 연극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브레이트 서사극 이론을 국내 도입한 주인공도 다름 아닌 바로 양혜숙이다. 이와 같이 그는 독일 표현주의 연극의 한국적 수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품격 넘치는 원로 연극학자이자 우리시대 대표적 문화지성으로 손꼽히는 양혜숙 선생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양혜숙 한극상’(제1회 시상식: 2024년 11월 15일 예정)을 제정하고, ‘한극 학교’와 ‘한극의 전당’을 세우기 위해 지금도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선생의 존재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문화계의 긍지이자 자랑이다. 일평생 특유의 열정과 집념으로 한극을 개념화하고 나아가 현대화, 세계화를 모색하는데 헌신했다. 양혜숙 선생이 직접 씨 뿌려 거둬드린 ‘한극’이라는 우리식 개념과 공연문법에서 ‘문화는 잉여의 소산’이라 정의한 독일의 낭만파 작가 루드비히 티크의 말을 새삼 곱씹게 된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642